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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은 원래 간식이 아니었다?|선사시대 사람들에게 떡은 밥보다 먼저 먹던 주식이었다

읽는 시간 약 15분

10년간 방앗간에서 곡물을 빻고 시루에 증기를 올려 떡을 쪄내며 늘 되새기는 고고학적 사실은, 떡이 처음부터 오늘날처럼 차나 커피와 함께 즐기는 ‘디저트나 간식’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도정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청동기 선사시대에는 단단한 잡곡을 온전한 밥으로 익히기 어려웠기에, 곡물을 부수고 가루 내어 시루 증기로 익혀낸 **시루떡이야말로 밥보다 먼저 인류의 생존을 책임지던 가장 오래된 주식(主食)**이었습니다.

단순히 “옛날 음식이다”라는 관점을 넘어, 10년 차 기술자의 실무 시선으로 나진 초도패총 유적의 청동기 시루가 갖는 증기 가열 가공학적 의미, 삼국시대 솥의 등장과 밥·떡의 역할 분리, 조선시대 제분 기술의 발달, 그리고 현대 간식으로 재해석된 떡의 역사적 변천사를 알기 쉽게 풀어 정리해 드립니다.

쌀밥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곡물을 어떻게 먹었는가’입니다

우리는 지금 쌀을 보면 당연히 밥을 떠올립니다.

쌀을 씻고,

물을 넣고,

솥이나 전기밥솥에서 익히면 밥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의 익숙한 조리법입니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에게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쌀을 손쉽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곡식은 그대로 먹기 어렵고, 껍질을 벗기고 가공해야 합니다.

특히 곡물을 지금처럼 정교하게 도정하고 쌀알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기술이 부족했던 시대에는 곡물을 부수거나 갈아서 먹는 방법이 자연스러운 선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도 초기에는 도정기술이 충분하지 않아 깨지고 갈린 곡물로 죽이나 떡과 같은 형태의 음식을 만들었을 가능성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떡의 시작을 단순히 “쌀을 쪄서 만든 음식”으로 보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사람들이 곡물을 어떻게 먹기 좋은 상태로 바꾸었는가?”

입니다.

가루로 만드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곡물을 그대로 익히는 것과 곡물을 가루로 만들어 익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방식입니다.

곡물을 갈면 입자가 작아집니다.

그러면 물과 섞기도 쉬워지고 열을 가했을 때 익는 방식도 달라집니다.그리고 그 가루를 시루에 넣어 증기로 익히면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는 과정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곡물을 사람이 먹기 좋은 형태로 바꾸는 중요한 기술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떡의 역사를 생각할 때는 맛있는 간식의 탄생보다 먼저 곡물 가공기술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루는 떡의 역사에서 왜 중요할까요?

떡 이야기를 하면서 시루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오래된 시루 유물 가운데는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것도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시루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청동기시대 나진 초도패총 출토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루는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어 아래에서 올라오는 증기가 음식에 닿도록 만든 조리도구입니다.

불에 직접 굽는 방식과는 다릅니다.

물을 끓이고,

증기를 만들고,

그 증기를 이용해 음식을 익힙니다.

이 기술이 가능해지면서 곡물을 가루로 만들어 찌는 음식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루는 단순한 조리도구 하나가 아니라 우리 떡의 역사와 함께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처음부터 ‘쌀떡’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했던 내용과도 연결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떡을 생각하면 대부분 쌀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된 시기의 곡물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초기 시루떡과 관련해 당시 생산되던 곡물이 기장·피·조·보리·밀과 같은 잡곡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초기에는 이러한 곡물을 가루로 만들어 쪘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떡의 시작을 쌀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떡의 바탕에는 더 넓은 의미의 곡물 가공과 찌는 기술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쌀을 비롯한 다양한 곡물이 떡의 재료로 사용되었고, 지역과 시대에 따라 여러 형태로 발전해갔습니다.

그렇다면 왜 밥이 떡을 대신하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이 이번 글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설명을 보면 선사시대에는 잡곡을 가루 내어 시루에 찌는 형태의 떡이 주식이었지만, 이후 잡곡을 솥에 넣어 익히는 밥이 주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즉 음식의 중심이 변화한 것입니다.

떡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떡의 역할이 달라진 것입니다.

밥이 일상적인 주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떡은 점점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으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명절,

제사,

잔치,

출산과 돌,

혼례,

고사 등 중요한 순간에 떡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떡은 주식에서 ‘특별한 음식’으로 변했습니다

이 변화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특별한 날에 떡을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보면 떡이 일상적인 먹거리에서 특별한 음식으로 변화한 과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떡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사람들은 특별한 날에 떡을 만들고,

가족과 나누고,

이웃에게 나누고,

신에게 올리고,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떡에 음식 이상의 의미가 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 하필 떡이었을까요?

여기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깁니다.

밥도 곡물로 만들고 떡도 곡물로 만드는데,

왜 특별한 날에는 떡을 만들었을까요?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좋은 음식이라는 점입니다.

하나의 시루에 많은 양을 쪄서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재료와 모양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곡물가루에 여러 재료를 넣고 켜를 만들거나 고물을 얹거나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셋째는 상징성을 담기 좋다는 점입니다.

흰색, 붉은색, 둥근 모양, 긴 모양 등 음식의 색과 형태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이 떡을 특별한 날의 음식으로 발전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떡은 ‘나눔’의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떡은 혼자 먹는 음식이라기보다 함께 나누는 음식이라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도 예부터 철마다 또는 경조사 때 떡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는 풍습을 소개합니다.

이사를 하면 떡을 돌리고,

고사를 지내면 떡을 올리고,

잔치가 있으면 떡을 준비했습니다.

이런 풍습을 보면 떡은 단순히 먹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음식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떡의 역사는 음식의 역사만이 아닙니다

떡을 조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음식 이야기가 사람 이야기로 바뀝니다.

곡물을 어떻게 가공했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

어떤 날에 먹었는지,

누구와 나누었는지,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까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떡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떡의 종류를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이 먹고살았던 방식과 생각까지 들여다보는 일이 됩니다.

지금의 떡과 과거의 떡은 같은 음식일까요?

이 질문도 재미있습니다.

오늘날의 떡과 선사시대의 떡은 이름은 같지만 실제 모습은 상당히 달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날에는 쌀의 품종도 다양하고,

방앗간에서 아주 고운 쌀가루를 만들 수 있으며,

설탕과 다양한 부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시루와 찜기도 훨씬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지금과 같은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먹는 떡과 과거의 떡을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수 있습니다.

떡이라는 큰 틀은 이어졌지만 그 안의 재료와 기술은 계속 변화해온 것입니다.

여기에서 ‘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떡을 만들면서 살펴본 것은 쌀의 수분이었습니다.

쌀을 왜 불리는지,

왜 충분히 불려야 하는지,

손으로 부숴보면서 상태를 확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방아에서 쌀을 어떻게 내리는지,

시루에서 어떻게 익히는지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떡의 역사를 더 오래된 시대로 가져가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왜 사람들은 곡물을 가루로 만들었을까?”

그리고

“왜 그것을 물과 함께 익히고, 왜 시루를 사용했을까?”

결국 떡은 단순히 재료의 이름이 아니라 곡물을 사람이 먹기 좋은 형태로 바꾸는 기술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은 오늘날보다 훨씬 많은 것을 직접 판단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쌀을 방앗간에 맡기면 일정한 형태의 쌀가루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직접 곡물을 가공해야 했습니다.

곡물의 상태를 보고,

얼마나 갈아야 하는지 판단하고,

물을 얼마나 사용할지 결정하고,

어떻게 익힐지 생각해야 했습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음식의 기술이 발전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했던 용석님의 제조 경험과도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실제 떡을 만들 때는 단순히 숫자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쌀을 손으로 확인하고,

필요하면 입으로 식감을 판단하고,

쌀가루 상태를 보고,

계절에 따라 수분을 조절하고,

방아의 조임과 풀음을 판단합니다.

오랜 옛날에도 음식은 결국 사람이 재료의 상태를 읽는 기술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주식’이었던 떡이 왜 지금은 간식이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합니다.

우리의 식생활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밥이 일상적인 주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떡은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으로 역할이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조리기술과 식재료가 발전했고,

떡의 종류도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떡을 만드는 방법이 크게 발전했고, 다양한 종류의 떡이 문헌에 기록되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우리나라 떡이 가장 발달한 시기를 조선시대로 설명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전통 떡의 형태가 이 시기에 더욱 다양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떡은 ‘간식’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떡은 시대에 따라 역할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시대에는 주식이었고,

어떤 시대에는 별식이었으며,

또 어떤 때에는 제사와 의례의 음식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이웃과 나누는 음식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간식이나 디저트로 먹기도 합니다.

떡이라는 음식의 역할은 고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생활이 바뀌면서 떡의 역할도 함께 변해왔습니다.

그래서 떡의 역사를 현재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떡을 간식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과거로 돌아가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곡물을 먹기 위한 방법이었을 수 있고,

이후 주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밥이 주식이 된 뒤에는 특별한 음식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현대적인 디저트와 간식으로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떡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자신의 역할을 바꾸면서 살아남은 음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무리

오늘날 우리는 떡을 간식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떡의 역사를 아주 오래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모습은 달라집니다.

선사시대에는 잡곡을 가루 내어 시루에 찌는 형태의 떡이 주식이었다고 설명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떡은 지금처럼 커피와 함께 먹는 간식이 아니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곡물을 가공하여 만든 중요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솥에 곡물을 익혀 먹는 밥이 주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떡의 역할이 달라졌습니다.

떡은 점점 일상적인 주식에서 벗어나 별식과 의례음식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날에 떡을 만들고,

가족과 나누고,

이웃에게 나누고,

제사와 고사에 올리면서 떡에는 음식 이상의 의미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가 떡 한 조각을 먹는 모습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우리가 먹는 것은 단순히 쌀가루를 쪄서 만든 음식 하나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곡물을 가공했던 오래된 기술이 있고, 시루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지혜가 있고, 주식에서 별식으로 변해온 식생활의 역사가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누었던 기억까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떡의 시작을 쌀 하나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잡곡을 포함한 여러 곡물이 떡의 재료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사용되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떡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런 질문에 도착하게 됩니다.

“떡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곡물을 어떻게 먹기 좋은 음식으로 바꾸었는가?”

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탄생한 음식이 시대를 지나면서 주식이 되고,

별식이 되고,

의례음식이 되고,

오늘날에는 간식과 디저트가 되었습니다.

떡은 변하지 않은 음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변할 때마다 함께 변해온 음식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떡을 바라보면서 과거를 생각해보는 것은 단순히 옛날 음식을 공부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이 무엇을 먹었고, 어떻게 먹었으며, 왜 그런 음식을 만들었는지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떡은 지금도 살아 있는 전통음식입니다.

과거의 떡을 그대로 되살리는 것만이 전통을 이어가는 방법은 아닙니다.

과거 사람들이 재료를 바라보고 음식을 만들어냈던 생각을 이해하고, 그것을 오늘의 기술과 식생활 속에서 다시 해석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오래된 떡을 오늘날에도 살아 있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10여 년간 새벽 쌀가루를 빻아 시루에 안치며 느낀 진리는, 떡이라는 음식이 선사시대의 주식에서부터 의례음식을 거쳐 현대의 간식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과 식문화 변천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해 온 살아있는 유산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오늘 공유해 드린 떡의 역사와 곡물 가공기술의 깊은 가치를 바탕으로, 우리가 즐기는 떡 한 조각 속에 담긴 오랜 지혜를 새롭게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10년 차 기술자가 알려주는 경사스러운 날 떡을 나누던 전통 문화와 정성의 가치 보러가기]

ji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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