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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에서 쌀을 빻을 때 왜 조였다 풀었을까?|쌀가루의 상태가 떡을 바꾸는 이유

읽는 시간 약 14분

10년간 방앗간에서 롤러 기계의 쇠소리를 들으며 쌀을 내려온 기술자에게 ‘방아를 조이고 푸는 작업’은 떡의 식감을 좌우하는 가장 섬세한 제분 기술입니다.

불린 쌀을 단순히 센 힘으로 가쇄하여 잘게 부수는 것이 아니라, 방아 롤러의 간극(Gap)을 미세하게 조율하며 기계적 마찰열에 의한 전분 손상(Damaged Starch)을 최소화하고 원하는 입도 분포(Particle Size Distribution)를 만들어내는 가공학적 공정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가루를 곱게 빻는다”라는 일차원적 이해를 넘어, 10년 차 기술자의 현장 실무 시선으로 습식 제분(Wet Milling) 시 방아 간극 조율이 전분 손상도 및 수분 흡수 속도에 미치는 영향, 설기용과 찰떡용 쌀가루 입자의 차이, 그리고 쌀 불림-제분-찜 공정의 밀접한 연결고리를 알기 쉽게 풀어 정리해 드립니다.

쌀을 가루로 만드는 것은 단순히 잘게 부수는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쌀을 빻는다는 말을 단순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쌀알을 작은 조각으로 만들면 결국 쌀가루가 되기 때문에, 얼마나 강한 힘으로 잘게 부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쌀을 분쇄하면 쌀알의 크기가 작아지는 동시에 쌀 내부의 전분 구조에도 기계적인 힘이 가해집니다.

현대의 쌀가루 연구에서도 분쇄 과정은 쌀가루의 입자 크기뿐 아니라 전분 손상 정도에도 영향을 주는 중요한 공정으로 다뤄집니다. 분쇄 방법에 따라 입자 크기와 전분 손상 정도가 달라지고, 이러한 차이는 쌀가루의 수분 흡수와 가열 특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즉,

쌀을 얼마나 잘게 만들었는가

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태의 쌀가루를 만들었는가

를 함께 봐야 합니다.

이 차이가 떡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합니다.

떡은 쌀가루를 다시 물과 열을 이용해 하나의 조직으로 만들어내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불린 쌀을 빻는 이유도 여기에서 연결된다

앞선 글에서 쌀을 왜 불리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쌀을 물에 불리면 쌀알의 수분 상태가 변하고 구조가 느슨해지면서 분쇄하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연구에서도 수침 과정에서 쌀알의 수분이 증가하면 쌀알의 구조가 느슨해지고, 습식 제분을 통해 상대적으로 작은 입자의 쌀가루를 얻으면서 전분 손상을 줄이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쌀을 불리는 과정과 빻는 과정은 서로 별개의 작업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불림이 분쇄를 위한 쌀의 상태를 준비하는 과정이라면, 분쇄는 그 상태의 쌀을 떡을 만들 수 있는 가루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방아의 역할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방아는 단순히 옛날식 분쇄기가 아니라 쌀의 상태를 다음 제조 과정에 맞는 쌀가루로 바꾸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방아의 ‘조임과 풀음’

제가 떡을 만들면서 경험한 것 중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방아에서 쌀을 내릴 때 조임과 풀음의 차이입니다.

방아 작업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쌀을 넣고 힘을 주어 계속 빻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작업에서는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수 없었습니다.

쌀의 상태에 따라 방아의 조임과 풀음에 차이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쌀가루의 상태를 살펴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조임과 풀음은 단순히 기계를 세게 누르느냐 약하게 누르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쌀의 상태와 작업 상황에 맞춰 분쇄되는 정도를 조절하고, 가루가 만들어지는 상태를 확인하면서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는 경험적인 판단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방아 작업 역시 재료의 상태를 읽는 과정이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쌀의 불림 상태를 손과 입으로 확인했다면, 방아에서는 쌀가루의 상태를 보면서 다시 판단해야 했습니다.

왜 무조건 곱게 빻으면 좋은 것이 아닐까?

쌀가루를 만들 때 흔히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떡은 부드러워야 하니까 최대한 곱게 빻으면 좋은 것 아닐까?”

하지만 이것도 떡의 종류와 목적에 따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쌀가루의 입자 크기는 가루가 물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가열될 때의 특성 등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연구에서도 쌀가루의 입자 크기와 전분 손상 정도가 쌀가루의 물리·화학적 특성과 가공 특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더 곱게 = 더 좋은 떡”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떡을 만들 것인지에 따라 적절한 가루의 상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떡의 종류와 배합, 수분량, 찌는 방법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쌀가루도 그 목적에 맞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떡 제조에서 매우 중요한 생각입니다.

좋은 쌀가루는 가장 고운 쌀가루가 아니라, 만들고자 하는 떡에 맞는 쌀가루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방아에서 생기는 전분 손상은 무엇일까?

쌀을 빻으면 쌀알 내부의 전분 입자에도 물리적인 힘이 가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전분의 구조가 일부 손상될 수 있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전분 손상이라고 합니다.

현대 연구에서는 분쇄 방법에 따라 전분 손상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건식·반습식·습식 분쇄를 비교했을 때 분쇄 방식에 따라 쌀가루의 입자 크기와 전분 손상 정도가 유의하게 달라졌으며, 해당 실험에서는 습식 분쇄가 비교적 낮은 전분 손상과 작은 평균 입자 크기를 보였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전분의 상태가 가루의 물성에 영향을 주고, 이후 가열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성에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연구 결과를 그대로 전통 방아의 조임과 풀음에 적용하여 “조이면 전분 손상이 몇 퍼센트 줄어든다”처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전통 방아와 현대의 실험용 분쇄기는 구조와 작동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현대의 분쇄 연구를 통해 ‘분쇄 조건이 쌀가루의 특성에 영향을 준다’는 원리를 이해하고, 용석님의 전통적인 제조 경험을 그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임과 풀음은 왜 필요했을까?

이 질문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전통 방아에서 조임과 풀음의 구체적인 목적을 하나의 이유로 단정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 제조 경험의 관점에서는 몇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쌀의 상태에 맞춰 분쇄 정도를 조절하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입니다.

둘째는 가루가 만들어지는 상태를 확인하면서 작업하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입니다.

셋째는 한 번에 지나치게 강한 힘을 주기보다 원하는 가루 상태를 얻기 위해 작업을 조절했을 가능성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을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 제조 과정과 현대적인 분쇄 원리를 함께 놓고 생각해보는 해석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오히려 전통 떡을 연구하는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옛사람들이 남긴 모든 제조 행동의 이유가 문헌으로 설명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아 있는 기록과 실제 제조 경험, 현대의 과학적 지식을 서로 비교하면서 그 의미를 찾아가야 합니다.

선조들에게 방아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쌀을 분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쌀을 직접 준비하고, 물에 불리고, 물기를 조절하고, 방아를 사용해 가루로 만들고, 그 가루의 상태를 다시 확인해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생각하면 방아는 단순히 힘을 대신해주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재료를 음식으로 변화시키는 제조 도구였습니다.

특히 떡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쌀가루의 상태가 이후 찌는 과정과 연결되기 때문에 방아에서 만들어지는 가루의 상태가 중요했을 것입니다.

물론 당시 사람들이 이를 오늘날의 ‘입자 크기’나 ‘전분 손상’이라는 용어로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반복적인 제조 경험을 통해 어떤 상태의 쌀가루가 좋은 떡으로 이어지는지를 경험적으로 익혔을 가능성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현대의 분쇄기와 방아를 단순히 비교하면 안 되는 이유

오늘날의 분쇄기와 옛날 방아를 비교하면서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두 도구는 만들어진 목적과 작업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기계는 균일한 생산과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 발전했습니다.

반면 전통적인 방아는 사람이 직접 재료를 다루면서 작업하는 도구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비교해야 할 것은 “옛날 것이 더 좋았느냐, 현대 것이 더 좋으냐”가 아닙니다.

오히려

“같은 쌀을 떡으로 만들기 위해 과거에는 어떤 방식으로 재료를 다루었고, 현대에는 그것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라는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이렇게 바라보면 전통과 현대를 경쟁시키지 않고 서로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방아에서 나온 쌀가루는 다시 시루를 만난다

쌀을 잘 불리고, 방아에서 적절한 상태의 가루를 만들었다면 이제 다음 단계는 찌는 과정입니다.

여기에서 앞선 과정들이 다시 연결됩니다.

쌀의 불림 상태가 달랐다면 가루의 상태가 달라질 수 있고, 가루의 입자와 전분 상태가 달라지면 가열 과정에서 수분을 받아들이고 익는 과정에도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결국

불림 → 분쇄 → 찜

은 서로 독립된 세 가지 과정이 아닙니다.

하나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조건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떡을 만드는 사람은 각 단계를 따로 보는 것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연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방아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이 아니었다

방아를 경험하면서 처음에는 얼마나 힘을 주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쌀의 상태에 맞춰 작업하는 것이었습니다.

쌀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고,

그 상태에 맞춰 분쇄하고,

가루의 상태를 살펴보고,

필요하면 다시 조절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가루를 다음 공정으로 넘기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방아의 기술은 단순히 힘을 사용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재료와 도구의 관계를 이해하는 기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경험이 의미가 있을까?

현대에는 전통 방아를 직접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생각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좋은 떡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좋은 쌀을 구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쌀을 어떻게 불렸는지,

어떤 상태에서 분쇄했는지,

가루가 얼마나 균일한지,

수분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 가루를 어떻게 찌는지가 모두 연결됩니다.

현대의 연구 역시 분쇄 방식과 입자 크기, 전분 손상 등이 쌀가루의 특성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과거와 현재는 도구가 달라졌을 뿐,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공정을 조절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은 연결될 수 있습니다.

마무리|방아는 쌀을 부수는 도구가 아니라 떡의 출발점을 만드는 도구였다

쌀을 불린 뒤 방아에서 빻는 과정은 겉으로 보면 단순합니다.

하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 보면 쌀의 수분 상태, 분쇄 방법, 입자 크기, 전분의 상태 등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시 시루에서 찌는 과정과 만나 우리가 먹는 떡의 조직과 식감으로 나타납니다.

제가 떡을 만들면서 경험했던 방아의 조임과 풀음도 단순한 작업 동작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쌀의 상태를 보고, 그 상태에 맞춰 분쇄 과정을 조절하며, 만들어지는 가루의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과학은 분쇄 과정에서 입자 크기와 전분 손상 등이 쌀가루의 특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아의 조임과 풀음이 정확히 어떤 과학적 이유로 이루어졌는지는 충분한 자료 없이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선조들은 쌀을 단순히 잘게 부수려고 방아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떡을 만들기 위해 쌀의 상태를 가루의 상태로 바꾸는 기술을 사용했던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전통 떡을 현대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떡은 쌀을 빻는다고 끝나는 음식이 아닙니다.

어떤 상태의 쌀을 어떤 상태의 가루로 바꾸느냐에서부터 이미 떡의 결과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떡을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하나의 제조 기술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떡을 만드는 법보다 왜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가.

방아를 이해하는 것 역시 이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지난 10여 년간 롤러의 조임과 풀음을 손끝으로 느끼며 쌀가루를 내려온 경험 속에서 얻은 진리는, 떡의 거칠고 부드러운 식감이 이미 방아를 통과하는 순간 결정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늘 나누어 드린 방아 조율과 쌀가루 입자의 가공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빻아낸 쌀가루가 만들어내는 떡 한 조각의 섬세한 조직감을 깊이 있게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10년 차 기술자가 알려주는 계절별 기온 변화에 따라 떡의 물잡이 양을 달리했던 진짜 이유 보러가기]

ji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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